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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책 리뷰] 취미는 사생활 - 친절한 주인공과 그렇지 못한 결말

 

 같은 아파트 위아래층에 사는 '나'와 은협. '나'는 아이 넷을 키우며 고군분투하는 은협을 도와주며 그녀와 친해진다. 그러던 중 은협이 집에서 남편 '보일'이 숨겨둔 여자 구두를 발견하게 되고, 보일의 불륜 현장을 잡기 위해 보일을 미행하기에 이른다.

 

 책의 시작은 병원에 간 은협과 은협의 딸이자 셋째인 소연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연히 3인칭 시점의 소설인가 보다 하고 읽다 보면 갑자기 '나'가 등장한다. 마치 은협의 주변인처럼. 은협의 아래층에 사는 언니이자 소연에게 '이모'라고 불리는 '나'는 아이 넷을 케어하기 바쁜 은협을 도와 막내 민희도 봐주고, 소연도 봐주고, 때로는 은협을 위한 물질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모습이 나에게는 어색하게 다가왔다. 우연히 알게 된 아래층 언니가 아무리 직업이 없고 부유하다고 해도 저렇게까지 도와줄 수 있는 건가. 저렇게 친절한 사람이 있다고? '나'는 아이들을 위해 비싼 유모차도 사주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은협의 첫째 둘째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대신 학교에도 가준다. 심지어 은협의 집 주인이 은협을 집에서 내쫓기 위해 자신의 아들 신혼집으로 써야 하니 집을 빼달라고 했을 때 그것이 사실인지 밝혀내기 위해 부동산에 거짓말까지 한다. 

 

 이렇게 친절한 주인공이 있다니... 하지만 제목이 <취미는 사생활>이라서 그런지 그런 '나'의 캐릭터가 의아하면서도 은협의 남편 '보일' 쪽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고, 책 소개에 비해 심심한 내용이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결말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결말 포함>

 

 보일이 숨겨놓은 구두의 정체는 외도의 증거가 아니라 보일이 여장을 하기 위해 사놓은 것으로 밝혀진다. 보일은 자신만의 공간, 일탈을 꿈꾸다 여장을 하게 되었고 은협은 이런 남편의 행동에 어느 정도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며 보일의 행동을 눈감아 준다. 하지만 전세 문제, 아이들 문제 등으로 정신없는 은협과는 다르게 보일은 또다시 자신만의 공간을 찾기 위해 '나'의 시골 땅을 자신에게 매매해 줄 것을 요청한다. 

 

 한편 은협의 집 전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은협과 자신의 집을 바꾸는 것을 제안한다. 집주인이 거짓말로 은협을 내쫓았지만 그 집을 자신이 들어가고, 은협에게는 자신이 살던 집을 기존의 전세가로 내어주는 제안이었다. 은협은 전셋값이 오르는 상황에서 나의 제안이 어리둥절하지만 나는 어차피 시골 땅을 보일에게 팔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의 남편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자살했음이 밝혀지며 남편을 잃고 외로운 와중에 은협과 친해지며 소연, 민희, 대연, 중연에게 애정이 생긴 건가 보다, 돈도 토지 보상으로 번 것이라 큰 미련이 없나 보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이사를 마친지 얼마 후 은협은 자신의 집이 '나'의 집이 아니고, 나 역시도 월세로 살던 집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즉, 나는 사기를 치고 도망간 것이다. 기존에 은협이 살던 집은 단기 임대로 한 달만 사는 척하고 은협에게는 자신의 집을 자가인 척 속여 전세금을 받아낸 것이다. 

 

 남편 보일에게는 곧 국토부에 환수 및 추징될 시골 땅값까지 받아내고 한국을 떠나는 '나'. 

 

 너무 친절해서 의아했던 주인공이 사실은 사기꾼이었다는 걸 책의 마지막 10페이지쯤 남겨놓고 알게 된다. 세상에.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이라 정말 놀랐다. 그러고 나니 그동안 지나치게 친절했던 '나'의 행동들이 사실은 은협의 표현대로 '썅년'에 가까웠음을 무섭게 깨닫게 됐다.

 

 그리고 하나 더 반전이 있는데 그 돈을 다 챙겨 외국으로 떠난 내가 우연히 범죄의 타겟이 되어 허무하게 길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사기꾼이었다는 것에 비하면 사실 큰 충격은 아니었다. 인생이 허무할 뿐.

 

 <취미는 사생활>이라는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소설이 독자를 너무나도 친절하게 잘 속이고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물론 나만 속았을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봐온 책들과는 다른, 새로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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